Good buy my 011 잡담



수십년간 정들었던 011 번호를 드디어 오늘 떠나보냈습니다.
시티폰부터 통신 생활을 시작해, 
처음으로 011 번호를 받은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군요.

사실 011 번호를 계속 유지한 건, 
제 고집과 게으름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허나 전 제 번호로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친구들과 업무상 지인, 
그리고 가족들과 통화하는 이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2G 사용자는 여러분의 등골을 파먹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간 번호 이동조차 하지 않았고,
전화나 문자 외에는 거의 가능한 서비스도 없는 핸드폰을 사용하며,
묵묵히 3G와 LTE, 
그리고 지금의 5G 시대를 여는데 기반이 되어 왔죠.

제 주변 누구도 011 번호를 포기하는데 엄청난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보상을 원하고 011 번호를 유지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카톡도 못하고,
인터넷도 못하고,
동영상도 안되고,
사진도 제대로 못찍어도,
그저 원하는 건 단 하나,
그냥 오랜 기간 유지해, 
자신의 수족처럼 느껴지는 번호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핸드폰 번호는 공공재라고 하니 반환하겠습니다.
네, 저희 생각이 잘못되었고, 
이건 저희것이 아니라고 하니 돌려 드리죠.
하지만 어설픈 연결이나, 
생색내는 싸구려 보상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두십시오.



다음 차례는 이제 3G를 쓰는 여러분입니다.
그 다음은 LTE 그리고 그 다음, 또 다음…

우리나라는 참 안타까워요.
왜 조용히 가만있는 걸 그냥 놔두지 않고, 
무조건 새로운 것으로 갈아치우는 걸까요?

이제 오늘을 기점으로 제 011 번호는 그냥 사라지겠죠.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전화오던 무슨 보상을 바라냐던 상담원도요. 

아마 두 번 다시 SK를 쓰지 않을 겁니다.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 이런 넑두리를 늘어두어 죄송합니다.
피곤하군요.



내일 출근하려면 이제 자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일요일에 출근하지 않도록 좋은 직장을 가시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내일도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011 011 011 011 ...010


덧글

  • G-32호 2020/07/26 00:39 # 답글

    뭐 저도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피쳐폰을 주야장창 유지하던 사람이었지 말입니다. 근데 결국 카톡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니 결국 스마트폰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세상의 흐름이라는거 참 무섭지 말이죠
  • Lapis 2020/07/27 17:11 #

    세상의 흐름은 참 무섭습니다.
    수십년간 할인 혜택 한 번 못받고 통신 시장을 일구는데 일조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적페로 몰릴 수 있다는게 정말 무섭더군요.
    세상은 참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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