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s of Shadows Read more


그림자 소환



올해는 그가 결혼한 지 30 년 되는 해였고,
그의 가족이 황제 폐하를 위해 싸우도록 징집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십일조 기념일(Tithe-Giving)로부터 20년이 된 해였다.
헤이콥 말테누스는 아내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다양한 문서가 높다랗게 쌓여있는 긴 철제 탁자 앞에 놓여진
총무성(Administratum Palace) 필사실의 긴 의자 위에
다른 필경사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수많은 자동제어 해골(Servo-skull)들이
포위 공격으로 죽어가는 제국 공업 행성(Forge World)에서 발신되는
보고서의 요약본, 편지, 규정 수정안, 재수정안
그리고 자잘하고 사소한 관료적이고 번잡한 사항들을 기록하는
필경사들의 머리 위로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이곳의 자동제어 해골(Servo-skull)들은
정보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들은 정보의 중요성을 평가하고,
다양한 정보가 담긴 양피지를 보존할지 파기할지를 결정했다.
말테누스가 지금 입력하는 문서도 수십 년 전의 기록이었다.
대부분, 이미 상대방이나 혹은 양측 모두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의 세부 사항이나 명확한 내용은 잊힌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어떤 기록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반드시 모든 기록은 목록별로 전부 저장되어야했다.

강철 탯줄에 연결된 귀중한 발광구(Lumoglobe)는 책상 한가운데
단 한대만 놓여있었고, 주변으로 은은한 갈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천장에는 방을 밝히기 위해
깜박이는 수지 양초가 듬성듬성 꽂힌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지만,
어둠을 쫒아내기엔 역부족이었고,
겨우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밝기만을 제공했다.

말테누스는 지하 거주구에서 해충을 식용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해충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했다는
대략 50 년 전 보고서를 막 입력 완료했다.
그는 그가 어떤 내용을 입력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항상 벨리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아무리 가더라도,
그녀의 부재가 불러오는 애수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헤이콥."
속삭임이 그의 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그가 깜짝 놀라 올려다보니 그녀의 그림자가 보였다.

벨리아는 거기에 없었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20 년간 푸무스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쌍둥이 발란과 율리스 역시 헤어져서 돌아오지 못했다.
두 아이 모두 겨우 10 살이었다.
그의 아들들은 징집되기엔 너무 어렸지만,
급격하게 감소하는 푸무스의 인구 때문에
십일조 징집 연령은 점차 낮아졌다.
어쨌건 둘 다 모두 건장한 남자들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말테누스는 둘을 떠나보내고 나서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물론 벨리아를 떠나보냈을 때처럼,
두 아들의 징집도 무척 자랑스러웠다.

아쉽게도 그는 제국을 위해 싸울 수 없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했고, 폐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손가락은 관절염 때문에 동그랗게 말렸고,
마디, 마디가 퉁퉁 불어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총무성의 축축한 뱃속에 들어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업무를 계속하며,
끝없이 그의 희생에 대해 인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있었다.

그 여성처럼 보이는 기묘한 형상은
흔들리는 촛불에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각지고 말라빠진 형상일 뿐이었다.
그에게 벨리아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게 할 증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그림자가 그녀라고 생각했다.
비록 차갑고 눈보라 속, 바람 소리처럼도 들렸지만,
그의 귓가에 들리는 그 속삭임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말테누스는 자리에 앉아 격렬하게 몸서리치며
탁자 위에 올려 진 양피지들을 손으로 두들겼다.
다른 필경사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의 곁에 남은 가족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그림자는 사라져 버렸다.

"뭐가 문제야, 헤이콥?"
아르투르 티세인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말테누스가 대답했다.
"기록소에서 참조해야 할 게 있었는데 빼먹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탁자에서 멀어지며,
그림자가 나타났던 방향으로 향했다.

'저건 그녀가 아냐.'
'그녀가 여기 있을 순 없어.'

그는 천장까지 높게 솟아있는 기록 보관대 사이를 지나갔다.
15 피트(약 4.57 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념비같은 이 기록보관대는
그 앞 레일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용을 열람할 수 있는
거대한 서랍장처럼 생겨있었다. 
종복(Servitor)들이 사다리를 타고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문서들을 회수하거나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사다리가 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소리와 서랍장들을 여닫는 소리가
기록보관실 안에 가득했다.
이 소리들은 그가 나아갈수록,
어둡고 깊이를 모르는 웅덩이에 자갈을 던져 넣은 것처럼 작아져갔다.

조금 더 나아가자, 말테누스는 아바일라 레베켄을 만났다.
그녀는 호의적으로 고개를 끄떡여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와 사색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말테누스?"
그녀가 물었다.
그녀 역시 20 년 전,
십일조 기념일(Tithe-Giving)에 그녀의 가족과 헤어졌다.
그와 그녀의 우정은 동일한 자부심과 상실감을 나누며 생겨났다.

"그러고 있지."
말테누스는 산만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도 그러리라 믿어, 레베켄."

"벨리아와 당신 아들들이 걱정이에요.
황제께서 쌍둥이 형제를 보우하시길."

"황제께서 보우해 주실 거야."
그는 슬며시 웃으며 대답하고는 걸음을 다시 옮겼다.

황제께서 보우하신다라.
말테누스는 이 약속의 문구에 새겨진 희망 덕에
지금까지 제정신을 유지했다.
황제께서는 그의 가족을 보우하실 것이다.
말테누스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푸무스를 떠난 뒤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지만,
그는 꿈속에서도 가족들과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에게 있어 존재의 의미였다.
가족들이 없다면, 그는 종복(Servitor)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말테누스는 기록보관실의 거대한 갈림길 앞에 멈춰 섰다.
지금 대체 뭐하는 거야?
그건 전부 네 상상의 산물이라고.

그는 돌아서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쌍둥이 아들 중 하나가 복도 반대편 끝에 서 있었다.

말테누스는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그가 있었는데…
분명 그가 거기에 보였는데…

누굴 본거지?
쌍둥이 중 누구였지?

그는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데, 두려움을 느꼈다.
고통스러운 수치심 속에서 그는
발란과 율리스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바람에
각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 그가 자신의 아들들과 만나게 되더라도,
아마 그는 쌍둥이를 구분할 수 없을 터였다.

지금 만난다 해도 둘 다 서른 살이겠지… 그래도 내 새끼인데.

내 새끼들.
그는 지난 20 년간, 자신의 쌍둥이 아들을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본 형상이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마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그는 이쯤에서 돌아서야 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지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잠시 주변을 슬쩍 살펴보고는
아들이 보였던 복도 끝으로 슬며시 걸어갔다.
아래쪽에 위치한 기록보관용 서랍 중에 하나가 열려있었다.
그는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며칠 뒤에 정리할 지, 몇 년 뒤에 정리될 지,
아무런 기약 없이 방치된 정리되지 않은 문서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말테누스는 자신의 입이 바짝 말라가는 걸 느끼며,
맨 위에 놓인 모조 양피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제국 병력 수송선,
신앙의 찬미(Exaltation of Faith)호의 사고 보고서였다.
출항 전, 함선의 플라즈마 동력부 기밀실(氣密室)에 균열이 발견되었고,
기술 사제(Tech-priest)가 전면적인 교체를 명령하는 명령서를 발송했다.
이어지는 문서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전송 오류였는지
해당 명령서는 함선 수리팀에게 전달되지 못했으나,
문서상에는 '교체 완료'로 기록되었다.
그 결과 함선은 수리를 받지 못하고 결함을 안은 채 출항했다.
신앙의 찬미(Exaltation of Faith)호는 
어찌어찌 왜곡계(Warp) 내로의 진입은 성공했다.
하지만 물질계(Materium)로 재진입하기 위해 플라즈마 엔진을 구동한 순간,
균열부가 파열되면서 지옥만큼 뜨거운 플라즈마의 화염 폭풍이
함선 전체를 내부에서 휩쓸었고, 탑승자 전원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보고서는 정확히 20 년 전, 기록이었다.

말테누스는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고서 뒤에 별첨된 사상자 명단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는 M 항목에서 입을 떡 벌린 채 망연자실하게 시선을 멈췄다.
그의 목구멍이 슬픔으로 좁아드는 바람에 비명이 튀어나오다가 끊기자,
말테누스는 온몸으로 전율했다.
목록에는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적혀있었다.

발란 말테누스
율리스 말테누스
벨리아 말테누스

그들은 20 년 전,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심지어 의미 있는 죽음도 아니었다.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영웅처럼 산화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멍청한 실수 때문에 희생된 희생양이었다.
이들의 비극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들은 제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에
의미 없게 희생당하는 무가치한 피해자들 중 하나였다.
세 이름들이 그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는 그의 앞에 서있는 기록 보관대 앞으로 고꾸라졌다.
관절염으로 굽은 그의 손 위로
양피지와 모조 양피지들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필경사 말테누스, 자네는 지금 제국의 문서에 손상을 입히고 있다."
말테우스는 경기하듯 몸을 뒤틀며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었다.
감독관 타라신이 복도 반대편 끝에 서 있었다.
그녀의 피부도 회색이었고,
그녀의 머리카락도 회색이었고,
그녀의 옷도 회색이었다.
무자비하고 엄격한 그녀는 흡사 납덩이같았다.

"저… 저는…"
말테누스는 말을 더듬었다.
지금 그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즉시, 자리로 돌아가도록."

"예, 감독관님."

말테누스는 지금 업무로 복귀할만한 정신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는 즉시 복귀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는 텅 빈 인형처럼 반사적으로 일을 수행했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타는 듯한 고통과
무의미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넘치는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파고들만 한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분노.
그는 그의 모든 희망과 꿈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우주에게 격분했다.
그가 지난 20 년간 살기 위해 붙잡아온 거짓에 분노했다.
거대한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고 착각해온 자신의 삶에 화가 났다.

황제여 보우하소서.

황제여 보우하소서.

아니.
그는 우리를 보우하지 않는다.

말테누스는 고뇌 속에서 고통받는 걸 멈추려고 노력하면서
힘들고 단조로운 판에 박힌 듯한 하루를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야심한 밤이 되어 업무를 종료할 때도,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뚫고 어두운 길을 지나 허름한 숙소로 돌아갈 때도,
감정이 전혀 진정되지 않고 그를 따라왔다.
이곳의 거리는 낡고 쇠락한 높다란 거주탑에 짓눌려 매우 비좁았다.
보도블록과 건물들의 외관은 검댕이와 숨 막히는 연기,
그리고 미세먼지 탓에 지저분한 때에 찌들어 있었다.
아주 더러운 회색 스모그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에
말테누스는 1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두텁게 내린 눈은 회색의 축축한 덩어리가 되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뺨에 내린 눈은 검은 점을 남기고, 눈물처럼 그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은 비할 바가 없이 거대했고,
증오도 그만큼 커져갔다.

푸무스의 인구는 다른 자원들처럼 점차 줄어들다가 희박해져갔다.
특히 말테누스가 거주하는 거주구는 상황이 심각해서
구역 전체가 거의 버려지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여기 저기 버려진 건물들의 부서진 유리창들이
마치 해골의 눈구멍처럼 보였다.
눈발이 부서진 창틀 사이로 하염없이 들이쳤다.

말테누스가 사는 건물에 사는 사람은 채 10 명이 안되었고,
심지어 그가 사는 층에는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그의 퇴근길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버려진 건물과 지하에 숨어살면서
난민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뒤적이는 쥐새끼들을 빼면
퇴근길에 마주친 생명체는 아예 없다시피 했다.

빈 거리를 건널 때,
말테누스는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그의 왼쪽과 오른 쪽에
반쯤 안개와 스모그에 가려진 채로
쌍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말테누스가 걸음을 멈추자,
한 블록 건너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꼼짝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직접 쳐다보자,
그림자는 두터운 검뎅이와 눈발 사이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그림자는 다시 돌아왔다.
쌍둥이는 그의 시선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위치에 숨어
그와 보조를 맞춰 함께 걷고 있었다. 

저들은 저기에 없어.
저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환상에 지나지 않아.

단호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의 아들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떠올랐다.
갈림길 앞에 선 그의 앞에 쌍둥이가 나타나 한 명씩 길 끝에 서있었다.
그는 제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희미해진 그의 기억 때문에 두 아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벨리아도 여기에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의 바로 뒤에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그가 고개를 돌리면 사라졌다.
그녀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나 그를 심판하려는 듯이 감싸 안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흘렀어, 벨리아.
그래도 당신은 분명히 기억해, 벨리아!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여주겠어?

아,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들 모두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이제 세상은 그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그가 외로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가도록 지지해주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끝없는 외로움과 애절한 공허가 그의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는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더!"
그는 텅 빈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나는 당신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우리 가족들을 모두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줄 수 있어!
제발 한 번만 더!"

그는 황제를 향해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믿음과 헌신을 저버린 황제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고,
두 번 다시 속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던 가족의 기이한 죽음과
정확히 20 년이 되던 날, 그들을 데려간 사건 보고서를 접하고 나니,
무언가 더 큰 존재가 상황을 조작했다는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건 우연의 산물 따위가 아니었다.
여기엔 운명을 자아내는 어떤 존재가 개입한 게, 분명했다.
 
"제발 저의 요청(Boon)을 들어주십시오."
그는 운명을 자아내는 존재에게 간청했다.
그의 간곡한 마음은 버려진 거주구의 경석콘크리트(Rockcrete)를
손톱으로 긁어 밭고랑을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제발 제게 그들을 한 번 더, 보게 해주십시오."

그가 진심을 담아 전심전력으로 그 존재에게 기도를 한 순간,
갑자기 그의 주위를 맴돌던 그림자들이 사라졌다.
조용히 내리는 눈 사이로 침묵만이 존재했다.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던 마음에서 만들어낸 상상들조차 사라지자,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그의 등 뒤에서 무거운 뭔가가 질질 끌려가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말테누스는 고개를 돌려
소용돌이치는 칠흑 같은 밤의 어둠 속을 돌아보았다.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그건 크고 괴상하게 생긴 거대한 덩어리였다.
가끔 두 다리를 질질 끄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다가,
간헐적으로 빠르게 걷는 소리도 들려왔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분노에 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더 이상 외형적으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한때 여성이었던 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게 맞을 것이다.

말테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연기와 눈을 뚫고 자신을 향해 오는 존재와
절대로 마주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중, 제일 빠르게 달렸다.
머지않아, 그의 약한 심장이 고통스럽게 요동쳤고,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의 폐도 산소를 빨아들이기 위해 거칠게 헐떡였다.
평소대로면 그는 이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발걸음과 비명이 그의 뒤로 더욱 가까워지는 바람에
몰려드는 두려움이 그를 계속 뛰게 만들었다.

그는 녹슬고 갈라진 그의 거주구 입구에 도착했고,
비틀대며 기다시피 계단을 따라 여섯 층을 한 번에 올라갔다.
그가 자신의 집이 위치한 층에 도달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저 거대한 존재가 올라오려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을 울리는 커다란 쿵 소리와 뭔가가 미끄러지는 소리,
그리고 다시 쿵 소리와 미끄러지는 소리가
계단참을 따라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비명소리가 다시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비명소리라기에는 뭔가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
오히려 목에 낀 무언가나 가래를 뱉어내고, 어떤 말을 하고자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말테누스는 자신의 집을 향해 어두운 복도를 내달리는 동안,
양손으로 그의 귀를 꽉 막았다.
복도 천장의 전등은 겨우 불이 들어올 정도로 희미한 수준이었다.
깜박이는 가냘픈 회색 불빛은
밤의 어둠을 쫒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말테누스는 이곳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한 번만 넘어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흐느껴 울며, 호주머니를 더듬어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즉시 문을 닫고, 바로 다시 잠갔다.

숨을 다잡으며 그는 문에서 얼른 뒤로 물러섰다.
어기적거리며 움직이는 그 존재는 점차 다가왔다.
한심하게도, 피난처를 찾아 도망친다는 게, 고작 자기 집이라니!
문 밖에서 손톱으로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리자,
말테누스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그 자리에 꼼작 못하고 서 있었다.

문은 경첩 째로 뜯겨 날아갔고, 공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가족 벨리아, 발란, 율리스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기를 원했던
그의 간절한 소원이 실현되었다.
비록 세 명의 몸이 하나로 붙은 채로 돌아왔지만,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이 다시 살아나 그를 찾아왔다.
벨리아가 비틀대며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몸통에는 두 아들이 녹아 붙어 있었기에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여섯 개의 다리가 제멋대로 바닥을 찾아 흐늘거렸고,
가끔씩 바닥을 찾으면 열심히 앞뒤로 움직였다.
세 쌍의 팔이 허공을 훑으며, 말테누스를 향해 여섯 개의 손을 뻗었다.
두 아들의 머리는 벨리아의 아래턱 양 옆에 붙어있었고,
그들의 입은 벨리아의 목 아래에서 하나로 합쳐져
무섭고 기이한 모습의 커다란 하나의 입을 이루고 있었다.
괴물의 피부는 검게 타들어가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잿더미 같은 그 피부 일부가  조금씩 부서져
말테누스의 발 앞에 떨어졌다.
 
괴물의 아가리가 커다랗게 열리더니,
알 수 없는 비명대신에 알아들을만한 단어를 내질렀다.
"네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말테누스의 가족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여섯 개의 눈은 그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냈고,
그는 그의 가족들이 고통을 겪기 전으로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의 가족은 그의 앞에 서서 세 쌍의 팔로 그들 들어올려
자신들과 한 덩이가 되게 끌어당겼다.

그의 비명은 악몽과도 같은 가족의 재결합에 묻혀 곧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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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돌아가는 추세를 보니
오늘은 번역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땜빵용 번역 하나 올려봅니다.

여름 밤에는 괴담이 제격이지요.


말테누스는 과연 불행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요즘들어 황제를 칭송하게에는 제국의 치부가 너무 버겁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나 혼돈의 신과 거래할 때는 주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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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량의 의역과 오역이 섞여 있습니다.

번역방식도 주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타인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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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자유로운 2019/06/13 19:33 # 답글

    역시 카오스의 유혹이란...

    근데 엄청 억울하겠습니다. 황제를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 Lapis 2019/06/14 09:27 #

    언제나 그렇듯이 황제를 믿고 평안한 안식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카오스를 믿고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볼 지.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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